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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대한민국 반도에 어떻게 커피가 도입되어 확산되어 왔는지에 대해 간단히 정리를 했다.

(the-investor.tistory.com/56)

 

고종이 마셨던 커피는 드립(Drip) 커피였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를 선호하게 된 후

60~70년대 커피 두 스푼, 프림 한 스푼, 설탕 한 스푼의 다방 커피가 트렌드를 잡았고 

 

8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판기와 대량 생산된 액상 커피가 나오면서

어느 순간 자판기 커피와 캔커피의 천국이 되었다.

 

90년대부터는 나이스데이, 네스카페 등 커피 전문점 들도 

대기업 중심으로 진입했다가 철수하는 스토리가 있었고

90년대 말에는 아예 스타벅스가 들어오며 현재의 대한민국 커피계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드립 커피의 한국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흔히 커피계에는 일(1)서 쓰리(3)박이라고 서씨 한 명과 박씨 세 명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한다.

한국전쟁이후 인스턴트 커피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이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일본식 커피를 소개한 분들이라고나 할까?

   

     (사실 일제시대에도 드립커피였는데... 한국전쟁으로 명맥이 끊기고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를 계기로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던 것이 다시 드립커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일 서는 1980년대에 활동했던 서정달 선생이고 

 

쓰리 박은 과거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1990년대 부터

한국의 커피계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세 명인

박원준 선생, 박상홍 선생, 박이추 선생을 지칭한다.

 

 

먼저, 서정달 선생(작고)은 1980년대 명동 미도파 백화점(현재 롯데 영플라자 자리)에 있는

커피샵에서 융드립으로 명성이 높았었다.

 

다만, 이 분은 따로 자신의 블랜딩이나 로스팅, 드립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지 않아

돌아가신 이후 과거와 같은 융드립 커피의 맛을 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3755449 기사 일부 발췌

 

 

박원준(작고), 박상홍(미국 거주), 박이추(강릉 거주)의 세 분 중

 

박원준 선생은 이화여대 앞에서 '다도원'을 운영하며 고노 드립 등으로 유명했으나

2008년 작고하시며 더 이상 명맥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박상홍 선생오사카 출신으로 일본 곳곳의 커피 맛본 후 한국에 왔는데

마도로스 박이라는 별명이 그를 소개하듯

약 6년 간 배를 타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커피 맛을 보고 연구하였으나

이제는 미국에 정착한 관계로

한국에서 그의 커피 맛을 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5년 카페 뮤제오(caffemuseo.co.kr)와 인터뷰 당시

 

 

박이추 선생은 일본 국적 교포에서 1990년대 한국으로 귀화하신 분으로

도쿄의 '깃샤텐'이라는 학원에서 커피를 배워서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데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이 분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을때 훗카이도 지역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일을 배우고

한국에 와서 협동 농장 방식을 적용하려다가 목장 땅 소유권 분쟁 등으로 결국 목장일을 포기하고

여행차 갔었던 도쿄에서 우연히 커피를 접하고 그 향에 반해 

깃샤텐이라는 커피 학원에 등록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개인적인 커피 경험의 시작이고

 

1988년 혜화동 로터리(현재 엘빈 자리)에 가배 보헤미안을 오픈 한 것이 

한국에서의 커피 커리어 시작이다.

 

    (이때부터 서정달 선생, 박원준 선생, 박상홍 선생, 박이추 선생이 모임을 갖고
     커피에 대한 지식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 서, 쓰리 박이라는 말이 이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그는 90년대 초에 고려대가 있는 안암동에 인터네셔널 보헤미안을 이전 오픈하고

다시 강릉 연곡면에 추가 샵을 오픈하게 되면서 현재의 강릉 커피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아직도 안암동에는 보헤미안이 남아있다.)

 

    (혜화동에서 안암동으로 옮긴 이유가 당시 데모가 잦고 격렬하여
     최루탄 영향이 너무 많아 영업이 쉽지 않아서인데,

     안암동으로 옮기고 나니 커피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시 2004년 강릉 연곡면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안암동 보헤미안 시절,

그곳을 자주 찾던 교수가 단국대 사회교육원 커피 전문가 과정을 만들겠다고

그에게 상담을 받고 간 것이 2000년 2학기 단국대 천안 캠퍼스에서 지도교수를 하게되고

이 인연으로 단국대 서울 캠퍼스 지도교수,

 

2003년 부터는 강릉 원주대에서 바리스타 양성 과정을 지도하게 된다.

 

이제는 과거 일 서, 쓰리 박 중 막내로서(이제 80대 이신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강릉 지역에서 커피 나무를 키울 수 있는 보헤미안 매장을 추가 확보하고

서울 지역으로도 추가 매장을 상암동 지역에 오픈하였을 뿐 아니라

 

2016년 라오스 지역에 커피 농장 약 6,000평을 매입하며 커피 관련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커피 나무 심은 지 3년 후부터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아마 20년부터는 여기 커피를 만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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